20년 전 이탈리아 정부 장학생 선발 면접장에서 “이탈리아를 제대로 배워 한국에 올바르게 전달하는 문화전도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한 청년의 약속이 마침내 깊은 결실을 맺었다.
최근 이탈리아 모데나 발사믹식초 보호협회(Consorzio Tutele di Aceto Balsamico di Modena)로부터 한국인 최초로 ‘한국 시장 모니터링, 교육 및 정보 제공 담당자’로 공식 임명된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번 임명은 단순히 새로운 직함을 얻은 것을 넘어, 지난 20년간 한국과 이탈리아라는 두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연결하기 위해 묵묵히 걸어온 시간에 대한 현지의 가장 공식적인 인정이자 예우다.

■ 성악가에서 문화 탐구자로, 인생의 방향 전환
김성욱 대표의 여정은 2000년, 예술과 패션의 도시 이탈리아 밀라노에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첫발을 디디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지에서 마주한 실제 삶은 무대 위 상상과는 달랐고, 귀국 후 오페라 연출에 참여하면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깊어 졌다. 방황의 시기 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음악을 넘어선 '이탈리아' 그 자체였다.
언어와 역사, 문화 전체에 대한 호기심이 확장되면서 그는 2003년 전공을 이탈리아어문학으로 변경하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시절이던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부산 벡스코 밀레나리에, 대구 페스티벌, 조선일보 주최 루체비스타 등 대형 루미나리에 전시물 도입 프로젝트를 연이어 총괄하며 남부 이탈리아 축제 문화에 깊이 눈을 떴다. 특정 이벤트를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문화 전반을 관통하는 시각을 얻은 그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였던 2005년, 결혼과 함께 남부 풀리아(Puglia) 지역에 정착하며 본격적인 '연결자'의 삶을 시작했다.
■ 가업 잇는 철학을 배우고, 알프스 돌로미티에 도전하다
2년간 이탈리아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로마 산타 체칠리아에서 수학하는 동안, 그는 수많은 현지 기업을 방문하고 생산자들을 만났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간 한 가족이 대를 이어 가업을 지켜오는 독특한 생태계를 보며, 제품이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가문의 역사이자 지역의 문화, 세대를 이어온 철학'임을 깨달았다. "제품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생산자의 철학과 지역 문화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은 이때 정립됐다.
당시 주로 담당했던 농업 기계 분야를 통해 현지 농가를 직접 경험하며 "좋은 식품은 훌륭한 농업에서 시작된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배웠다. 2009년에는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친환경 제설제를 이탈리아로 제안하여 베네토주 도로공사와 함께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 돌로미티 지역에서 실제 성능 테스트를 이끌어내는 과감한 역수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 척박한 국내 시장에 이탈리아 식문화의 교과서를 쓰다
2011년 귀국 후 이탈리아 전문 식품 수입·유통 회사에 합류했으나, 당시 국내에는 식자재에 대한 전문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했다. 이에 김성욱 대표는 연구자의 자세로 파스타, 올리브오일, 토마토, 발사믹식초, 향신료 등 핵심 식재료의 생산 방식, 역사, 원산지 및 품질 기준(DOP, IGP 등)을 학술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업무적 필요로 시작했던 이 방대한 아카이브는 국내 대기업 식품 MD, R&D센터, 유명 셰프, 종사자들 사이에서 '식문화의 바이블'로 입소문이 나며 교육과 강연의 표준 교재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발사믹식초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닌 모데나(Modena) 지역이 수백 년간 지켜온 고귀한 문화유산임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정보 부족으로 인한 소비자 오해와 정직한 제조·수입업체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현지 보호협회 본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리포트를 전달해 온 노력이 이번 공식 담당자 임명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 끝나지 않은 약속, 새로운 책임의 시작
이번 임명은 20년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이탈리아의 본질을 한국에 올바르게 이식하려 했던 고독한 노력에 대해 현지 생산자 공동체가 보낸 최고의 헌사다. 협회가 부여한 임무 역시 상업적 판매 촉진이 아니라, 한국 시장 내 왜곡된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전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모데나 발사믹식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가치를 한국 사회에 널리 알리는 일이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이탈리아를 제대로 배워 한국에 제대로 전달하겠다'는 마음은 지난 20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다"는 그는, 이번 임명을 화려한 도달점이 아닌 앞으로의 20년을 향해 걸어가야 할 더 큰 책임과 사명의 시작이라고 믿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