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의 미사일이 도하와 마나마의 하늘을 가르던 그 순간에도, 걸프의 외교관들은 테헤란으로 이어지는 전화선을 끊지 않았다. 자신을 공격한 나라와 여전히 대화를 이어가는 나라들, 이 역설이야말로 지금 걸프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그림이다. 폭탄은 신뢰를 무너뜨렸지만,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포탄이 떨어질수록 걸프의 지도자들은 계산기를 더 바쁘게 두드렸다.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우산 하나가 얼마나 헐거웠는지를, 이번 전쟁이 뼈아프게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걸프는 지금 누구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가.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각각 '에픽 퓨리'와 '라이징 라이온'이라는 작전명으로 이란을 동시에 타격하면서, 걸프 산유국들은 자신들이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전쟁의 한복판에 놓였다. 이란은 미군 기지를 운용하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를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퍼부었다.
사실 균열의 조짐은 그보다 먼저 있었다.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부를 겨냥해 카타르 도하의 주거 지역을 폭격했을 때, 걸프 국가들은 미국이라는 안전판이 언제든 뚫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카타르 영토가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공습에 불쾌감을 드러내면서도 사전 승인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바로 그 직후인 9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는 파키스탄과 상호 방위 협정을 전격 체결했다. 전쟁이 터지자, 사우디는 이 협정을 실제로 발동했고, 파키스탄은 병력과 항공기를 리야드 인근에 배치했다. 협정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지만,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걸프가 워싱턴 이외의 우산을 손에 쥐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전쟁이 백여 일을 넘기며 미국과 이란은 지난달 양해각서에 서명해 공식적으로 전쟁을 끝냈다. 그러나 혁명수비대가 주도하는 이란군은 양해각서 체결 이후에도 바레인과 쿠웨이트를 향해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종이 위의 휴전과 현실의 화약 냄새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그 간극을 메우려 분주히 움직였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바레인을 잇달아 순방하며 걸프협력회의 정상회의에 참석했고, 쿠웨이트에는 80억 달러 규모의 방공 레이더 체계 판매까지 성사시켰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 안보 전략은 중동을 더 이상 최우선 지정학적 과제로 여기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워싱턴의 시선이 서반구로 옮겨가는 사이, 걸프는 유럽산 무기 도입을 늘리고 러시아·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다지며, 튀르키예·이집트·파키스탄을 잇는, 이른바 '쿼드' 협의체까지 구상하고 있다.
아랍 걸프 국가연구소의 애나 제이컵스 칼라프 연구원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의 관심사가 미국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를 견제할 수 있는 지역 내 세력 균형이라고 짚었다. 퀸시연구소의 애널 셸린 연구원 역시 미군 기지가 억지력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걸프가 워싱턴 의존도를 낮추려 할 것이라 내다봤다.
흥미로운 대목은 경제를 안보의 도구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최근 스위스 협상장을 떠나며 가진 한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에 가장 우호적인 아랍에미리트조차 혁명수비대 관계자들과 전에 없던 투자 유치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전했다. 어떤 조건이면 자국을 투자 대상국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아랍에미리트가 묻자, 이란 측은 그렇게 하겠다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무기가 아니라 전력망과 투자로 서로를 묶어 두면, 이란도 두 번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길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변수는 이스라엘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에게 거듭 감사를 표하면서도,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가 무장을 해제할 때까지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양해각서 첫 줄이 역내 전역의 휴전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이스라엘의 셈법은 워싱턴의 셈법과 완전히 포개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소식을 지켜보며 한 가지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사람이든 나라든, 자신을 지켜 줄 울타리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안전한 길일까. 오랜 세월 국경 너머 낯선 땅에서 살아 본 사람은 안다. 진짜 위기의 순간에 힘이 되어 준 건 크고 화려한 동맹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이어진 작고 신실한 관계들이었다는 것을.
걸프의 다변화는 결국 무기 계약서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궁극적인 신뢰를 두어야 하는지를 되묻는 질문이다. 사우디도, 아랍에미리트도, 지금은 여러 개의 끈을 동시에 붙잡고 있다. 그러나 끈이 많아질수록 정작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흐려지기 마련이다. 미사일이 지나간 자리에도, 협상 테이블 위에도, 사람은 결국 무엇을 붙들고 오늘을 버텨내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