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漢儒學] 叔向(숙향)과 平公(평공), 권력의 그림자 아래 선 사람들

한비자(韓非子)를 읽다 보면 인간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중 춘추시대 숙향과 평공의 일화는 오늘의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어느 날 숙향이 평공 곁에 앉아 국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평공은 종아리 통증과 다리 마비로 인해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고 한다. 조금만 자세를 바꾸면 훨씬 편해질 수 있었겠지만 그는 끝내 앉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숙향을 예우하는 자리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문이 진나라 전역에 퍼지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숙향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다. 군주가 다리에 경련이 날 정도인데도 감히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못할 정도로 존중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에서는 관직을 버리고 숙향에게 의탁하려는 사람들이 나라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많아졌다고 한다.

 

언뜻 보면 숙향의 덕망과 인품을 칭송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비는 이런 일화를 단순히 미담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훨씬 냉정하고 현실적인 인간 심리였다.

 

사람들은 정말 숙향의 인품에 감복해서 몰려들었을까. 물론 숙향이 뛰어난 인물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숙향이라는 사람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숙향을 대하는 군주의 태도를 보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숙향의 덕보다 숙향 뒤에 놓인 권력의 방향을 읽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권력에 민감하다. 힘이 있는 사람 주변에서는 평범한 사람도 비범해 보이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유능해 보인다. 심지어 인격이 부족해도 훌륭한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권력은 사람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힘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권력 주변으로 모인다. 그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의외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힘의 중심에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이다. 권력 가까이에 있으면 자신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때로는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마저 흐리게 만든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모습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어 왔다. 왕조 시대에도 그랬고 민주주의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의 중심이 형성되면 반드시 그 주변에는 권력의 언어를 대신 말해주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들은 권력자의 말 한마디를 철학으로 만들고, 작은 실수조차 큰 전략으로 포장한다. 어제까지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사람도 권력의 후광을 입는 순간 갑자기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이 권력 그 자체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가진 힘은 자신의 힘이 아니다. 권력자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착시에 불과하다. 권력이 머무는 동안에는 거대한 존재처럼 보일 수 있지만, 권력이 이동하는 순간 그 그림자도 함께 사라진다.

 

그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있다. 진짜 실력, 진짜 인품, 그리고 진짜 무게다.

 

나는 권력자 그 자체보다 권력의 힘을 빌려 과도하게 설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더 경계하게 된다. 권력자는 적어도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착각한다. 문제는 그 착각이 오래갈수록 오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아도 다르지 않다. 권력자의 힘을 등에 업었다고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권력자의 생각을 대신 전달하며 스스로 영향력 있는 인물인 양 행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줄을 서며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늘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오늘의 중심이 내일의 변방이 될 수 있고, 오늘의 후광이 내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권력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그 사람의 본질이다.

 

고전은 오래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놀라울 만큼 현재적이다. 시대가 바뀌고 제도가 바뀌어도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둘러싼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저 사람이 따르는 것은 과연 가치인가, 아니면 권력인가.

 

이 질문 앞에서 많은 것이 선명해진다. 권력을 좇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원칙을 좇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결국 시대를 바꾸는 것은 권력의 그림자 아래서 소리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이 바뀌어도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다.

 

작성 2026.06.23 10:11 수정 2026.06.2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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