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1년 겨울, 한 사내가 종이쪽지 앞에 홀로 앉아 있다. 취임을 앞둔 대통령 당선인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기 직전, 그는 누구에게 보낼 것도 아닌 사사로운 단상 하나를 적어 내려간다. 거기서 그는 미국의 번영이 정부 제도 자체에서 온 것이 아니라 "만인의 자유"라는 하나의 원리에서 비롯됐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잠언의 한 구절을 빌려 두 개의 문서를 나란히 놓는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언 25:11).
독립선언서는 ‘금’ 사과요, 그 둘레에 짜인 헌법과 연방은 ‘은’ 액자라는 것이다. 액자는 사과를 가리거나 망가뜨리려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돋보이게 하고 지키려 만든 것이다. 액자가 사과를 위해 존재하지, 사과가 액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짧은 비유 한 줄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설계도가 통째로 담겨 있다.
그런데 165년이 흐른 지금, 많은 이가 이 순서를 잊었다. 액자를 보물로 떠받들면서 정작 그 안의 사과가 무엇이었는지를 흐릿하게 만든다. 2026년 7월 4일, 독립선언 250주년을 앞둔 미국은 도리어 깊은 자기 의심에 빠져 있다. 대학 강의실에서는 '평등'이 시대를 초월한 진리인지, 아니면 한 시대의 산물에 불과한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공유된 신조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마저 떠돈다.
이 안갯속에서 3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킨 한 사람이 있다. 연방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다. 그는 올해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독립선언 250주년을 기념해 강연했다. 그의 일관된 주장은 명료하다. 독립선언서는 의례적 수사가 아니라 공화국의 토대를 이루는 정치 원리의 선언이며, 헌법은 그 목적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곧 헌법은 은으로 된 액자요, 그것이 지키려는 금으로 된 사과는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녔다는 선언이다.
이 통찰은 토머스가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져 온 강물이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미국인의 정신적 표현"이라 불렀다. 마틴 루서 킹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독립선언서가 나라에 새긴 평등의 약속 위에 지었다. 노예제 폐지의 정당성도, 민권 운동의 정당성도, 결국 그 한 문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캘빈 쿨리지는 독립선언 150주년 연설에서 그 진리들을 '최종적'이라 선언했다. 평등과 양도 불가의 권리, 동의에 의한 통치를 부정하는 건 전진이 아니라 후퇴라는 뜻이다.
토머스의 판결문은 이 신념을 법정으로 끌어내린다. 1995년 애더랜드 사건에서 그는 인종에 따라 시민을 다르게 대하는 정책이 "우리 헌법의 바탕에 흐르는 천부적 평등의 원리"와 충돌한다고 적으며, 그 근거로 독립선언서를 직접 가리켰다. 정부는 우리를 평등하게 만들 수 없으며, 다만 법 앞에서 평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보호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건국자들은 애초에 순수한 민주주의를 설계하지 않았다. 엘브리지 게리가 경계한 "민주주의의 과잉"을 두려워하여, 자연권을 지키기 위한 입헌 공화국을 의도적으로 세웠다.
다만 이 독법이 모두의 합의는 아니라는 점도 적어 두어야 공정하다. 토머스와 자주 뜻을 같이했던 앤터닌 스캘리아조차 이 지점에서는 갈라섰다. 그는 헌법의 문언과 전통에 집중하며, 독립선언서는 헌법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므로 해석의 잣대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금’ 사과를 어떻게 다룰지를 두고, 같은 보수 진영 안에서도 길이 갈린 셈이다. 살아 있는 논쟁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토머스가 던지는 마지막 한 수는 묵직하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굳게 믿는 나라는 그 기준에 못 미칠 때 자신을 스스로 꾸짖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을 버린 나라에는 자신을 비추어 볼 잣대 자체가 사라진다. 사과가 사라지면 겉을 둘러싼 '은' 액자는 그저 빈 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한 가지를 배운다. 어떤 공동체든, 어떤 사람이든, 자기 안에 ‘금’ 사과 하나를 품지 못하면 결국 화려한 틀만 끌어안은 채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권리의 근거로 삼은 단어가 '창조주'였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 곱씹는다. 권리가 권력자의 시혜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새겨진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다수도, 어떤 전문가도, 어떤 행정가도 투표로 거두어 갈 수 없는 것이 된다.
250년이라는 세월은 자랑할 거리가 아니라 돌아볼 거울이다. 한 나라가 자기 보물을 기억하는 일은, 한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잊지 않으려 애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우리는 액자를 닦느라 분주한 사이, 그 안의 사과가 썩어 가는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 삶의 ‘금’ 사과는, 지금 어디에 놓여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