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독특한 신이 등장한다. 바로 '아브락사스(Abraxas)'이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빛과 어둠, 신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인간에게 한쪽만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권의 과제 역시 이 아브락사스의 상징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람을 구분하는 데 익숙했다. 정상과 비정상, 다수와 소수, 우리와 그들, 선한 사람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나누며 세상을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인권의 역사는 이러한 구분을 넘어서는 과정이었다.
과거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냈고, 여성의 권리를 제한했으며,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기도 했다. 또한 국적, 인종, 종교, 출신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도 반복되었다.
하지만 인권은 말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이 원칙은 특정한 사람만을 위한 선언이 아니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만을 위한 권리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다양성 자체를 인정하는 선언이다.
『데미안』 속 아브락사스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인권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인권은 완벽한 인간, 정상적인 인간, 다수와 같은 인간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정상"이라는 이름의 기준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한 가족 형태가 정상으로 여겨지고, 특정한 외모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며, 특정한 삶의 방식이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때로 설명해야 하고, 때로 증명해야 하며, 때로는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인권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전에 평가하려 하고, 공감하기 전에 판단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인권 감수성은 상대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를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아브락사스가 상징하는 것은 선과 악의 혼재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그리고 인권 역시 인간을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답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여유와 포용이다. 누군가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브락사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인권은 그 질문에 대한 사회적 대답이다. 그리고 평등은 그 대답을 현실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실천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 법정교육연구소 김범일 대표
• 인권교육 전문강사
•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강사
•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강사
• 청렴·윤리경영 교육 전문가
• 조직문화 및 인권경영 컨설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