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가 이동권의 문제라면 발달장애는 학습권의 문제다

왜 발달장애는 아직도 “문제”로 보이지 않을까

정보가 없으면 선택도 없다

발달장애 인권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계단 앞에서 멈춰 서 있으면 사람들은 바로 불편함을 알아본다.

 

“엘리베이터가 필요하겠다.”
“경사로가 있어야 하겠다.”

 

문제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체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이야기돼 왔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확대, 장애인 이동권 보장 같은 변화도 그렇게 시작됐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전동휠체어 보급과 건강보험 지원 확대는 지체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발달장애는 조금 다르다.

 

발달장애인의 어려움은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회는 여전히 발달장애의 문제를 “문제”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체장애가 이동권의 문제라면, 발달장애는 학습권의 문제에 가깝다.”

 

왜냐하면 발달장애는 단순히 공부를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보를 이해하고, 선택하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과정 전체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정보를 받아들여야 판단할 수 있다. 판단이 가능해야 선택할 수 있고, 선택이 가능해야 자기 의견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정보 자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결국 선택도 어렵고, 자기결정권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회는 아직도 발달장애인을 보면 너무 쉽게 생각한다.

 

“어차피 설명해도 잘 못 알아들을 거야.”
“그냥 보호자가 결정하면 되잖아.”

 

그래서 많은 경우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시설에서도, 심지어 일상 속에서도 당사자보다 보호자와 먼저 이야기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배려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 접근권과 자기결정권의 문제다.

 

쉬운 말로 설명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데, 애초에 설명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해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기다려 주지 않으며, “못할 것”이라고 먼저 단정해 버린다.

 

결국 발달장애인은 선택의 경험 자체를 빼앗기게 된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무엇이 싫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조차 대신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달장애 인권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 보호가 아니다.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가 얼마나 설명하려 노력했는가.”

 

바로 그 부분이다.

 

실제로 최근 장애 인권의 흐름도 “보호 중심”에서 “자기결정권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단순히 돌봐주는 것을 넘어, 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체장애는 이동의 불편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사회가 비교적 빨리 문제를 인식했다. 반면 발달장애는 어려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늦게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런 말도 나온다.

 

“발달장애 인권은 지체장애 인권보다 약 20~30년 정도 늦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쉬운 정보 제공, 그림 설명, AAC(보완대체의사소통) 같은 의사소통 지원, 발달장애 학생의 통합교육, 자기결정권 교육 등이 점점 중요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부족한 건 기다려 주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판단한다.

 

대답이 느리면 못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표현이 다르면 의사가 없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어쩌면 발달장애 인권의 시작은 아주 단순한 곳에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당사자에게 먼저 설명하기.”
“천천히 기다려 주기.”
“이해할 기회를 포기하지 않기.”

 

인권은 거창한 말이 아니다.

 

누군가를 대신 결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끝까지 설명해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발달장애 인권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 본 칼럼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정보 접근권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됐으며, 특정 장애를 비교하거나 우열을 나누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장애 유형에 따라 필요한 인권의 관점이 다를 수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작성됐습니다.

 

 

■ 칼럼니스트 소개

 

‘국민에게 공감을 전하는 강사’ 국공선생 김범일 / 법정교육연구소 대표

 

김범일 대표는 공공기관·학교·기업 등을 대상으로 인권, 장애인 인식개선, 직장 내 괴롭힘 예방, 혐오표현 예방교육 등을 진행하며,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교육 활동과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장애 인권을 “보호”가 아닌 “존중과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며, 시민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내는 강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작성 2026.05.28 13:19 수정 2026.05.2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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