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상화의 정수 한국화가 손연칠 화백.. 붓끝에서 피어나는 ‘숙성된’ 인간의 향기


[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속도가 미덕이 되고 찰나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2026년 현대 미술의 한복판에서, 역행하듯 느린 걸음으로 본질을 파고드는 화가가 있다.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명예교수이자 한국 전통 초상화의 독보적 계승자인 무석 손연칠 화백이다. 그에게 초상화는 수백 년 전 역사적 인물을 현재로 소환하는 ‘영혼의 복원’이자, 동시대 인물의 내면을 화폭 위로 발효시키는 숭고한 의식이다.


손 화백은 ’“초상화는 작가의 오랜 연륜과 구도자적 수행을 통해 대상과의 정신적 교감의 깊이가 화폭에 투영되는 결과물이다”고 말한다. 그의 붓질 한 번에는 수십 년간 다져온 전통의 무게와, 그 틀을 깨고 나아가려는 예술가적 고뇌가 켜켜이 쌓여 있다. 최근 ‘양달사 장군’ 정부표준영정 제작이라는 대업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 번 화단의 주목을 받은 그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의 가치와 한국 회화가 나아가야 할 정체성을 짚어 본다.


▲월서 스님상. 140x100cm 종이바탕. 2015. 제주 천왕사 소장 


◆일랑 이종상과의 만남과 계승

손연칠 화백의 예술적 근간은 ‘전통’으로 압축된다. 1971년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과 1기생으로 입학하여 인간문화재 석정 스님으로 부터 전통불화와 단청기법을 사사 하였다. 고등교육 체계안에서 전통 불교미술을 수학한 국내 최초 세대에 속하는 이력은, 훗날 그가 초상화라는 장르에 천착헤게 되는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예술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은 대학 졸업 후, 한국 화단의 거목, 일랑 이종상 서울대 교수에게 기초 사군자 부터 다양한 화론 등, 동양화의 기본을 재정립 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이 시기의 학습은 단순한 사사관계를 넘어,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독자적인 초상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손 화백은 “전통불화를 공부하다보니 일정한 한계가 보였고, 불 보살상을 올바로 그리기 위해서는 인물화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목표가 보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불 보살상의 근본은 인간의 의인화’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인물화의 정점인 초상화에 평생을 투신하게 된다. 이는 인간의 형상과 그 내면에 깃든 정신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로 회화적 지평을 확장 했음을 의미한다. 


무석 손연칠은 스승 일랑으로 부터 엄격한 규율과 통제속에서 다양한 수련 과정을 거치며 초상화만의 독자적 특수성을 훈련 받게 된다. 이후, 스승 일랑의 추천으로 의상대사, 성삼문, 양만춘장군, 허난설헌, 선덕여대왕등 무려 8점의 정부표준영정을 제작하여 일랑 초상화의 유일한 계승자로 자리 매김하였다. 

근 현대 초상화의 정통 계맥은 조선의 마지막 어진(왕의 초상)화가 이당 김은호에서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일랑 이종상으로 이어진다. 일랑 선생은 오천원권과 오만원권 화폐 영정을 두점이나 그려 자신만의 독자적 조형 언어와 국가적 표상 체계를 완벽히 통합한 구조적 완결점이자, 독보적 권위자다. 따라서 일랑과 무석, 두 작가의 관계는 수직적 사승 관계를 넘어, 하나의 미학적 시대가 ’완결’되고 그 너머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는 역사적 접점에 놓여 있다. 일랑이 국가적 표상을 통해 전통의 전형을 완성 했다면, 무석은 그 완결된 토대 위에서 한국 초상화의 외연을 현대적으로 확장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임권택 감독상. 60x50cm 비단바탕. 2012. 개인소장 


◆기술을 넘어선 철학, 한국 초상화의 3대 독자성

무석 손연칠 화백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는 ‘전신사조(傳神寫照)’다. 이는 인물의 외형을 단순히 닮게 그리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지배하는 정신과 혼을 화폭에 옮겨 담는 과정이다. 서양의 초상화가 외부의 빛에 의한 명암 대비로 인물의 시각적 입체감을 강조한다면, 손 화백이 고수하는 전통 기법은 인물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의 기운과 생명력을 포착하는 데 목적을 둔다. 그의 붓끝에서 살아나는 한국 초상화의 독자성은 다음의 세 가지 기법을 통해 완성된다.


“첫째는 비단 뒷면에서 색을 칠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背彩法)으로, 인물의 성품이 안에서 밖으로 우러나오는 듯한 깊이감을 완성한다. 이어지는 반개법(半開法)은 눈을 반쯤 뜬 상태로 묘사하여 지혜와 자비, 그리고 삶을 관조하는 철학적 태도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육리문법(肉理紋法)은 피부 결 하나와 주름 한 가닥까지 세밀하게 기록함으로써, 인물의 생리적 실제성을 표현하는 전통 기법이다”


결국 손 화백이 강조하는 전통 기법의 정수는 ‘인간에 대한 경외심’으로 귀결된다. 그는 제자들에게, “숙련된 기교 이전에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초상화는 단순한 감상이나 주관적 정서의 산물이 아니라, 대상 인물과 작가 사이에 형성되는 정적(靜寂)인 교감속에서 대상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인격적 품위를 상대적으로 갖추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교에 앞선 인품의 완성, 그것이 바로 무석이 스승으로 부터 전수받은 ‘초상화의 근본’임을 강조한다.

▲정부표준영정 가야시조이진아시왕. 180x120cm. 고령역사박물관 소장


◆정부표준영정과 시대의 얼굴들을 기록하다

무석 손연칠 화백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정부표준영정’ 제작의 핵심 작가다. 최근 완성된 ‘양달사 장군’ 영정 제작은 예술적 소명을 넘어 역사 학자적 엄밀함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임진왜란 이전, 호남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던 장군의 기개를 복원하는 일에 그는 모든 혼신을 쏟았다.


그는 역사 인물 초상화 뿐만 아니라 고암, 녹원, 월서 스님 등의 진영과 스승 일랑을 비롯하여  고은, 김남조 시인, 임권택 감독, 김종규 회장 등 현대 문화사의 거목들과의 오랜 유대를 화폭에 담아왔다. 이 작업에서 그는 대상의 외형적 형사에 메몰되지 않고, 각 인물의 삶의 괘적이 투영된 내면의 깊이를 포착해 냈다. 화면 구성 또한 전통적 규범을 응용하되, 인물의 성격에 맞춰 새로움을 추구하는 무석 다운 독자적 특수성을 보여 주었다. 초상화는 인물의 개성과 내면의 품성을 포착해야 하는 가장 어렵고도 숭고한 예술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전통의 틀을 익히고, 과감히 깨부수라

손연칠 화백의 교육 철학은 단호하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의 원칙이다. 제자들에게 전통 기법의 완벽한 습득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그 틀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과감한 ‘파격(破格)’을 시도하라고 가르친다.


그 스스로도 고려불화와 부석사 조사당 벽화를 국내 최초로 모사하고 안압지 신라단청 복원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석굴암 본존불상을 건칠불로 재현하는 작업을 수년에 걸쳐 하고있다. 그에게는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다. 이렇듯 치열한 실증 연구를 통해 전통의 실체를 확인한 뒤,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계속 이어진다. 무석의 이와같은 열정은, 그의 초상화가 단순한 ‘과거의 복제’를 넘어 독보적인 ‘현대 회화’로 평가받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정부표준영정. 양만춘 장군상. 80x110cm. 2026. 영암군 소장


◆피와 땀으로 빚어낸 영원한 현재

손연칠 화백은 한국 미술사학의 선구자 우현 고유섭 선생의 말을 빌려 자신의 예술 인생을 요약한다.


“전통이란 받고 싶다고 해서 받아지는 것이 아니요, 주고 싶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피와 땀, 혼신을 다한 자만이 비로소 맞이할 수 있는 결실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형상을 단 몇 초 만에 복제해내는 2026년의 오늘이지만, 손 화백의 붓끝에서 태어난 인물들은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생명력을 발산한다. 수천 번의 붓질이 겹쳐진 비단 결 위에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경외심과 역사의 무게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뼈대 위에 시대의 혼을 입히며 곰삭은 향기를 내뿜는 손연칠 화백의 예술. 그의 작업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기록을 넘어, 한국 회화가 나아가야 할 정체성과 나침반을 제시하는 영원한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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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4.27 12:25 수정 2026.04.2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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