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필터버블' 알고리즘의 감옥에서 탈출하라: 편안한 혐오와 불편한 사랑 사이에서

-당신의 뇌가 해킹당했다: 영혼을 조종하는 '달콤한 감옥' 탈출기.

-예수님은 왜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을까? 알고리즘을 파괴한 십자가의 비밀.

-아직도 그 유튜버 말만 믿나요? 당신을 '영적 바보'로 만드는 필터 버블의 공포.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나는 종종 중동의 어느 도시 찻집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히잡 쓴 젊은 여인들과 무슬림 청년들을 보았다. 오랜 기간 그 땅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내가 목격한 가장 큰 변화는 거대한 모스크의 첨탑도, 변화하는 정치 지형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영혼이 손바닥만 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이슬람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하철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홀린 듯, 각자의 작은 세상 속에 갇혀 있다.

 

오늘 나는 현대인들의 영혼을 좀먹고 있는 아주 교묘하고도 강력한 영적 질병, 바로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엘리 프레이저가 그의 저서 《생각 조종자들》에서 경고한 이 개념은,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우리의 과거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떠먹여 주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편의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지적 고립' 상태로 몰아넣고, 나아가 '영적 자폐' 상태로 만드는 무서운 덫이다.

 

달콤한 독배, 확증 편향의 늪

 

우리는 모두 편안함을 사랑한다. 내 생각에 동의해 주는 사람, 내 정치 성향과 맞는 뉴스, 내 신학적 견해를 지지하는 설교만을 듣고 싶어 한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구글의 알고리즘은 기가 막히게 우리의 이 욕망을 파고든다. 우리가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알고리즘은 우리 주위에 보이지 않는 거품 막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라며 무릎을 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부르지만, 나는 이것을 '영적 교만'의 현대적 변종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무슬림도 그들만의 강력한 ‘필터 버블’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주입된 이슬람의 교리와 문화적 관습이라는 알고리즘 속에서, 기독교를 왜곡된 시선으로만 바라보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었다. 꾸란 2장 7절은 “알라가 그들의 마음과 귀를 봉하셨고 그들의 눈에는 덮개가 씌워져 있다”라고 말한다. 비록 이 구절은 불신자를 향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오늘날 스스로 진리의 수호자라 자처하는 우리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만의 '신학적 필터 버블'에 갇혀, 이웃을 향한 눈과 귀를 스스로 봉해버린 것은 아닌지 뼈저리게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나와 다른 교파, 나와 다른 정치색, 그리고, 타 종교인을 향해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쏟아내는 유튜버들의 말에 환호한다. 그 거품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선이고, '그들'은 언제나 악이다. 이것은 에코 챔버(Echo Chamber), 즉 메아리 방이다. 내가 지른 고함이 벽에 부딪혀 다시 내 귀로 돌아오는 곳, 그곳에는 타인의 신음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도 들어올 틈이 없다.

 

예수, 알고리즘 파괴자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셨는가? 나는 감히 예수님을 '알고리즘 파괴자'라고 부르고 싶다. 당시 유대 사회는 정결법과 율법이라는 거대하고 견고한 필터 버블 속에 있었다. 그 알고리즘에 따르면, 세리는 매국노였고, 나병 환자는 저주받은 자였으며, 사마리아인은 상종 못 할 개와 같은 존재였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이들을 추천 목록에서 삭제하고 차단(Block)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알고리즘을 역행하셨다. 그분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수가성으로 들어가셨다(요한복음 4장). 유대인의 알고리즘으로는 절대 클릭해서는 안 되는 '사마리아인'이자 '여성', 그리고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부정한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거셨다. 예수님의 '좋아요'라는 클릭은 바리새인이 아닌, 죄인과 창기, 그리고 소외된 자들을 향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가복음 10장)는 필터 버블에 갇힌 율법 교사의 뒤통수를 치는 예수님의 강력한 일갈이었다. "네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묻는 그에게, 예수님은 유대인의 필터로는 절대 이웃이 될 수 없는 사마리아인을 '참된 이웃'의 모델로 제시하셨다. 예수님은 익숙한 동조의 거품을 찢고 나오셨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놓인 가장 거대한 차단의 벽을 허무신 사건이었다.

 

선교지에서의 고백: 혐오를 넘어 사랑으로

 

나 역시 처음 선교지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나만의 필터 버블에 갇혀 있었다. 나는 진리를 가진 자였고, 저들은 개종시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거리에서 들리는 '아잔(무슬림의 기도 소리)' 소리가 소음으로만 들렸고, 그들의 문화는 미개해 보였다. 그러나 성령님은 나의 그 교만한 거품을 터뜨리셨다.

 

어느 날, 라마단 기간에 굶주림을 참으며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내게 다가와 투박한 손으로 대추야자 한 알을 건네주었다. "당신도 나그네이니 배가 고플 것이오." 그 순간, 나의 선교적 알고리즘이 정지되었다. 내 앞에는 '적대적인 무슬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으나 길을 잃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 서 있었다. 내가 나의 거품 밖으로 나와 그들의 거친 손을 잡았을 때, 비로소 복음은 교리가 아닌 생명이 되어 그들에게 흘러갈 수 있었다.

 

우리가 필터 버블에 갇혀 있으면, 우리는 절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끼리끼리 모여서 "우리가 옳다"라고 외치는 것은 영적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세상은 지금 소통의 단절로 신음하고 있다. 좌와 우가 갈라지고, 세대와 세대가 단절되고, 성별이 서로를 혐오한다. 이 거대한 분열의 시대에, 알고리즘이 주는 달콤한 사탕을 뱉어내고 쓴 나물과 같은 현실의 아픔을 씹어 삼킬 자 누구인가?

 

불편함을 선택하는 거룩한 용기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이제 우리의 스마트폰과 영혼의 설정값을 바꾸어야 한다. 필터 버블을 깨는 유일한 바늘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랑'이다.

 

첫째, 의도적으로 반대편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나를 비판하는 소리,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의 주장을 클릭하라. 동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결핍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읽어내야 한다. 그것이 중보기도의 시작이다.

 

둘째,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라. 우리 교회 안에서도 나와 비슷한 수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거룩한 친교의 버블'을 깨야 한다. 가난한 자, 말이 통하지 않는 자, 냄새나는 자에게 다가가라.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말이다.

 

셋째, 성경을 '나를 위로하는 책'으로만 읽지 말고 '나를 도전하고 깨뜨리는 책'으로 읽어라. 에스겔 36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굳은 마음'이 바로 필터 버블에 갇혀 화석화된 마음이다.

 

지금 우리는 비록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우리의 영혼마저 인공지능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기계는 효율을 위해 분류하고 차단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사랑을 위해 끌어안고 연결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형상이다.

 

오늘, 당신의 손가락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당신의 영혼은 안전한 거품 속에 안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거친 바람이 부는 광야로 나아가 타인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하다.

 

벽을 허물라. 거품을 터뜨려라.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형제의 눈을 바라보라. 그곳에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작성 2025.12.11 09:39 수정 2025.12.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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