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의날(12월 10일), 야만의 시대를 건너는 우리의 자세, 다시 인간을 묻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당신의 존엄을 묻다: 12월 10일의 비망록.

-12월 10일, 달력의 숫자가 빨간색보다 더 붉게 보이는 충격적인 이유.

-우리가 '좋아요'를 누를 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비극의 연결고리.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달력의 숫자가 가리키는 무게

 

창밖에는 매서운 12월의 바람이 분다. 한 해의 끝자락, 거리는 크리스마스에 들뜬 불빛으로 반짝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낭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달력을 한 장 넘겨 12월 10일이라는 숫자 앞에 멈춰 서면, 묘한 부채감과 함께 옷깃을 여미게 된다. 오늘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단순히 기념일이라서가 아니다. 1948년, 인류가 피로 쓴 반성문이라 할 수 있는 '세계인권선언'이 세상에 나온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법전 속에 박제된 건조한 인권이 아니라, 거칠어진 우리 손등 위에 내려앉는 눈송이처럼 차갑고도 뜨거운, 살아있는 인간의 존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폐허 위에서 피어난 약속: "다시는, 결코 다시는"

 

시간을 70여 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휩쓸고 간 자리는 지옥과 다름없었다. 가스실의 연기, 폭격 맞은 도시의 잔해, 그리고 수천만 명의 죽음. 인간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목격한 인류는 공포에 떨었다. 그 참혹한 폐허 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떨리는 손으로 약속 하나를 써 내려갔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그것은 법조문이라기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인간성(Humanity)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기도였다. 국가가 국민을 학살하고, 이념이 사람을 부속품으로 취급하던 광기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인류의 마지막 자존심이 담긴 선언이었다. 그날 파리에서 울려 퍼진 의사봉 소리는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문명의 시대를 열겠다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묻는다.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

 

화려한 문명 뒤편의 그림자: 가자, 시리아, 그리고 우리 곁의 투명 인간들

 

우리는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접하고,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존엄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자 지구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아이들이 울고 있다. 시리아의 난민들은 국경이라는 차가운 철조망 앞에서 짐짝처럼 거부당한다. 우리는 뉴스 화면 너머로 그들을 보지만, 채널을 돌리는 순간 그들의 고통은 증발해 버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화려한 빌딩 숲 사이, 폐지를 줍는 노인의 굽은 등이나, 배달 오토바이 위에서 목숨을 걸고 질주하는 청년들의 땀방울 속에도 '인권'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나는 가끔 두렵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해져서, 오히려 그 무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할 뿐, 공감하지 못하는 '세련된 야만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관료였을 뿐이다. 생각하지 않음, 공감하지 않음. 그것이야말로 인권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다.

 

혐오의 시대를 건너는 법: 선을 지우는 용기

 

최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선을 긋는다. 내 편과 네 편, 남자와 여자, 부자와 빈자, 그리고 내국인과 외국인. 혐오는 전염병처럼 번져,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존재를 배척하고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세계인권선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진리는 명확하다. 인권은 자격증이 아니라는 것이다. 착한 사람, 쓸모 있는 사람, 우리 편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상장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심지어 죄인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누려야 할, 숨 쉬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했고, 이슬람의 가르침 역시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신앙의 척도로 삼았다. 종교와 이념을 떠나, 모든 위대한 스승들은 타인을 '또 다른 나'로 인식하라고 가르쳤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갈등의 대부분은, 타인을 나와 동등한 존엄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이나 이용해야 할 도구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나의 고백: 촛불 하나를 켜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나 역시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지하철역의 노숙인을 보며 불쾌해했고, 뉴스 속 난민들의 행렬을 보며 '내 세금이 쓰이면 어쩌지'라는 계산부터 먼저 했다. 세계 인권의 날인 오늘, 나는 내 안의 그 차가운 이기심을 마주한다.

 

거창한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온전한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보내는 미소, 그리고 부당한 일을 당한 동료를 위해 침묵하지 않는 작은 용기. 인권은 유엔 본부의 회의장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겨울바람이 차다. 하지만 춥다고 문을 닫아걸면 방 안의 공기는 탁해질 뿐이다. 인권은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일이다. 바깥의 차가운 바람을 맞더라도, 타인의 고통과 비명이 내 방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하는 일이다.

 

당신이 곧 기적이다

 

12월 10일. 이날은 단순히 과거의 선언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인간으로서 품격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 모든 폭력에 저항하겠다고 내 영혼에 다짐하는 날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존엄을 잃으면, 나의 존엄도 그만큼 훼손된다. 그러니 부디, 이 추운 겨울밤에 촛불 하나를 켜자. 어둠을 다 몰아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서 있는 자리만큼은 환하게 비출 수 있도록.

 

당신은 존엄하다. 그리고 당신 곁의 그 사람도, 당신만큼이나 눈부시게 존엄하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하고도 위대한 과업이다.

 

작성 2025.12.10 01:32 수정 2025.12.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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