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이야기: 본회퍼 편

-값비싼 희망은 낙관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행동'이다.

-광기 어린 폭군이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것을 보면서, 깨끗한 손으로 기도만 하는 것은 또 다른 '죄'임을 깨달았다.

-그는 죽음으로써, 희망이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임을 증명했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본회퍼와 희망

 

우리는 '희망'이라는 말을 너무나 값싸게 사용한다. 우리의 희망은 종종 '상황의 개선'과 동의어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기를",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희망은 철저히 '나'의 성공과 안위에 묶여있다. 그래서 그 희망이 꺾일 때, 우리는 쉽게 절망한다.

 

우리는 이 땅의 모든 '값싼 희망'을 부끄럽게 만드는 한 사람의 삶을 묵상한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독일 루터교회의 목사이자 신학자.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의 삶의 무게는 우리가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그의 삶은 우리의 기준에서 볼 때, 처절한 '실패'이다. 그가 꿈꾸었던 나치의 붕괴는 그가 죽은 뒤에야 찾아왔다. 그가 가담했던 히틀러 암살 계획(7.20 음모)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39살의 젊은 나이에, 전쟁이 끝나기 불과 몇 주 전인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의 교수대에서 '반역자'로 생을 마감한다.

 

여기에 우리의 질문이 있다. 모든 것이 실패하고, 가장 비참하게 죽어간 한 사람에게서,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희망은 안락함의 대가가 아니다

 

본회퍼가 마주한 시대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광기의 독재자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했고, 더 끔찍한 것은, 독일 교회가 그 광기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독일 민족'이라는 우상 앞에 신앙을 바쳤고, 히틀러의 십자가 없는 '국가 기독교'에 열광했다.

 

이 배교의 한복판에서, 본회퍼는 "아니오"라고 외친다. 그는 '고백교회'의 설립자가 되어, 교회가 세상의 권력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속해있음을 선포한다.

 

이때 탄생한 그의 역작 《나를 따르라(Nachfolge)》는,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는 '값싼 은혜(Cheap Grace)'와 '값비싼 은혜(Costly Grace)'를 구분한다.

 

'값싼 은혜'는 십자가 없는 은혜, 고난 없는 제자도, 순종 없는 믿음이다. 그것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 "나는 구원받았다"고 위안하는, 오늘 우리의 신앙과 닮아있다.

 

'값비싼 은혜'는 다르다. 그것은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전 존재로 응답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삶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세상의 고통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희망은 '행동'이다

 

나는 본회퍼의 삶에서, '값비싼 은혜'가 곧 '값비싼 희망'과 연결됨을 본다.

 

'값싼 희망'은 그저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라는 '낙관주의'이다. "하나님이 언젠가 저 악을 심판하시겠지."라며 뒷짐 지고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값비싼 희망'은 낙관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행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기에, 오늘 내가 그 '정의'의 도구가 되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설령 그 결과가 나의 실패와 죽음일지라도.

 

본회퍼는 안전한 미국 유학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독일의 형제들과 이 고난의 시간을 함께하지 않는다면, 전후 독일 교회의 재건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라며 죽음의 땅으로 돌아간다.

 

그의 희망은 '내가 살아남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의 희망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있었다.

 

가장 더러운 손, 가장 깨끗한 영혼

 

본회퍼의 고뇌는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어떻게 '살인'(히틀러 암살)을 계획할 수 있었는가?

 

이것이 그의 희망이 얼마나 처절하고 '현실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더 이상 '선한 방관자'로 남아 자신의 깨끗함을 지킬 수 없었다. 광기 어린 폭군이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것을 보면서, 깨끗한 손으로 기도만 하는 것은 또 다른 '죄'임을 깨달았다.

 

그는 가장 고통스러운 신학적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손에 피를 묻히는 죄'를 범하고, 그 죄에 대한 심판마저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겠다는, 한계상황 속에서의 믿음이었다.

 

그것은 깨끗한 순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땅의 고통에 무기력하게 고립된 '초월적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 속에서 함께 고난받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감행할 수 있었던, 가장 절박한 '책임'의 몸부림이었다.

 

그의 희망은 하늘에 떠 있지 않았다. 그의 희망은 가장 더럽고 고통스러운 이 땅의 현실 한복판에, 십자가처럼 박혀있었다.

 

희망은 죽음 너머에 있다

 

1943년 3월,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그의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그 차가운 감방에서, 그는 '희망'에 대한 가장 위대한 고백들을 써 내려간다.

 

그는 옥중에서 "세속 속의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교회의 벽 안에 갇힌 종교가 아니라, 세상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신앙을 말한다.

 

1945년 4월 9일 새벽. 그는 교수대 앞으로 끌려간다. 마지막 기도를 마친 그는 함께 갇혔던 의사에게 이 말을 남긴다.

 

"이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것이 '삶의 시작'입니다."

 

그의 육신은 절망 속에서 스러졌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죽음을 이겼다. 그의 희망은 '상황의 개선'에 있지 않고,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존재 자체에 굳게 닻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희망은 오늘 어디에 닻을 내리고 있는가. 여전히 '나'의 안위와 성공인가. 본회퍼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의 희망은 과연 '값싼'가? 아니면 '값비싼'가?

 

그는 죽음으로써, 희망이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임을 증명했다.

 

오늘 당신의 삶이 무너진 그 자리, 모든 것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당신은 과연 무엇을 희망하고 있는가?

 

*디트리히 본회퍼(독일어: Dietrich Bonhoeffer, 1906년 2월 4일~1945년 4월 9일)는 독일 루터 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 나치 운동가다. 고백 교회 설립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해야 하는 역할에 관한 책인 《나를 따르라Nachfolge》 (1937)가 유명하다. 그는 신학 외에도 반나치 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외국 첩보국(독일어: Abwehr)이 세운 계획인 7·20 음모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결국 1943년 3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결국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1945년 4월 교수형에 처했다.

 

작성 2025.11.11 18:28 수정 2025.11.1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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