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믿었던 신앙의 열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되는 진짜 이유

-우리는 그렇게, 거룩한 신비를 향한 감각을 잃어버린 채 그저 '종교인'이라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우리의 시선이 '그분'을 떠나 '나'를 향하고, '세상'을 향하고, '사람'을 향하고, '행위'를 향할 때, 신앙의 열정은 식어간다.

-신앙의 열정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우리에게는 누구나 '처음'의 기억이 있다. 칠흑 같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듯한, 메마른 사막에서 생명수를 만난 듯한 그 첫 경험 말이다. 그 존재를 처음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의 벅찬 감격,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충만함. 우리는 그 뜨거움을 '첫사랑'이라 부른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은 가장 뜨거웠던 불꽃마저 식히는 힘을 가졌다. 맹렬히 타오르던 장작은 어느새 온기 없는 재로 변하고, 우리는 그 미지근한 잿더미 앞에서 서성인다. "그때는 그랬지"라며 아련히 추억하지만, 지금 내 심장은 왜 이토록 차가운가.

 

처음 믿었던 그 신앙의 열정은 왜 시간과 함께 퇴색되는가?

 

이것은 단순히 '게을러서'라는 한마디로 폄하할 수 없는, 한 영혼의 복잡하고도 아픈 질문이다. 그 진짜 이유를,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며 고백하려 한다.

 

첫째, 우리는 '익숙함'이라는 안개 속에 길을 잃는다.

 

인간의 마음은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쾌락적응(Hedonic Adaptation)'처럼, 아무리 큰 기쁨이나 충격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배경이 되어버린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새벽을 깨우는 기도 소리, 함께 부르는 찬양의 멜로디,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을 찌르던 말씀. 그 모든 것이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상'이 되는 순간, 경이로움은 무뎌지기 시작한다.

 

매주 반복되는 예배는 감격의 현장이 아니라 지켜야 할 '스케줄'이 된다. 눈물로 고백하던 기도는 내 욕망을 나열하는 '주문'으로 변질된다. 이것은 의식적인 배신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성실하게 그 자리를 지켰기에, 그 성실함이 빚어낸 무서운 습관이다.

 

A의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처음 교회를 나왔을 때, 그는 작은 위로의 말에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울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는 가장 앞자리에 앉아 가장 무표정한 얼굴로 설교를 '점검'한다. 뜨거웠던 심장은 차가운 '판단'으로 굳었다. 우리는 그렇게, 거룩한 신비를 향한 감각을 잃어버린 채 그저 '종교인'이라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둘째, '세상'이라는 더 크고 시끄러운 소리에 우리의 영혼이 잠식당한다.

 

처음 믿었을 때, 우리의 시선은 오직 한 곳을 향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발을 딛고 선 이 '세상'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리고 이 세상의 가치관은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우리의 틈을 파고든다.

 

"남들만큼은 살아야지", "이 정도는 이뤄야 인정받지"라는 속삭임. 물질적 성공, 사회적 지위, 타인의 인정이라는 욕망은 '자기실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다.

 

B가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던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 치열함 속에서 그는 어느새 하나님을 찾던 시간을 '더 중요한' 일들에 내어주었다.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에 취해, 생명의 근원이었던 뿌리에서 멀어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나를 더 사랑하면, 다른 하나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의 매력은 너무나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반면, 신앙의 보상은 더디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인지부조화' 속에서 더 크고, 더 확실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도록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그렇게 우리의 영적 초점은 서서히 흐려지고, 결국 하나님은 '최우선'이 아닌 '최후의 보루'로 밀려나게 된다.

 

셋째, 우리는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쌓인 실망의 무게에 짓눌린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종종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은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이 전능한 존재가 이제 내 편이니, 내 앞길은 탄탄대로일 것이라는 환상. 그러나 삶은 여전히 혹독하다.

 

오히려 신앙 때문에 더 큰 시련을 겪기도 한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병세는 악화된다. C는 낫기를 위해 매달렸지만, 돌아온 것은 더 큰 고통이었다. 그때 우리는 묻는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이 실망은 단순한 낙담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의 근간을 흔드는 '영적 외상(Spiritual Trauma)'이다. 내가 믿었던 '선하심'과 내가 겪는 '현실' 사이의 거대한 괴리. 이 고통스러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실망하고, 더 나아가 분노한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고통의 순간에 '함께 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문제 해결사'로만 여겼던 미숙한 신앙은, 이 지점에서 좌초한다. 실망이 반복되면 냉소주의가 싹트고, 결국 "믿어봤자 소용없다"는 체념으로 교회를, 그리고 신앙을 등지게 된다.

 

넷째, 우리는 '본질'을 잃어버린 '형식'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신앙의 '행위' 자체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한다. 예배 출석, 헌금, 봉사, 기도 시간. 이 '종교적 의무'들은 원래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디딤돌을 쌓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D는 누구보다 성실한 신자였다. 매주 헌신적으로 봉사했고, 헌금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영적으로 풍성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하나님과 단둘이 깊은 교제를 나누는 '쉼'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일했지만, 하나님 '과' 함께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영적 나르시시즘의 함정이다. 자신의 '열심'과 '의로움'에 도취되어, 정작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습관적이고 의무적인 신앙생활은 우리의 영혼을 화석처럼 굳게 만든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잃어버린 바리새인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다섯째, 그리고 어쩌면 가장 아픈 이유일지 모르는, '공동체' 안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의 여정을 혼자 걸을 수 없다. 그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허락받았다. 서로의 짐을 지고, 함께 울고 웃으며 천국을 향해 가는 동역자들. 그러나 이 거룩한 공동체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연약한 인간들'의 집합소다.

 

E는 교회 봉사 중에 생긴 사소한 오해와 그로 인한 험담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는 '세상보다 더하다'고 느꼈다. 사랑을 기대했던 곳에서 받은 상처는 다른 어떤 상처보다 깊고 쓰라리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본다. 공동체에서 겪은 실망은 종종 하나님에 대한 신뢰 자체를 무너뜨린다. 인간적인 갈등, 위선적인 모습, 닫힌 마음들은 "저런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도 믿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결론으로 이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그 상처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을 만들고, 결국 영적인 고립을 자초하게 한다.

 

이 다섯 가지 이유는 결국 하나의 뿌리로 연결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시선이 '그분'을 떠나 '나'를 향하고, '세상'을 향하고, '사람'을 향하고, '행위'를 향할 때, 신앙의 열정은 식어간다는 것이다.

 

신앙이 퇴색되지 않으려면, 이 이유들을 아프게 직시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지금 익숙함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내 마음의 가장 큰 비중을 세상이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관계 없는 형식에만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뜨거웠던 첫 감격의 '느낌'을 재현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본질'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잿더미 속에 남은 작은 불씨를 다시 살피고, 그분을 향한 진실한 고백으로 다시 나아가야 한다. 신앙의 열정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다.

 

작성 2025.11.01 13:09 수정 2025.11.01 13:09

RSS피드 기사제공처 : 중동 디스커버리 / 등록기자: 김요셉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ai365news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좋은사람 #행복나눔 #사랑나눔..
AI 매칭엔진 도입 2026 충청권 ICT 취업박람회 개최
국회 조형물 거장 정보원 작가, 50년 베일 벗는다...성북서 역대급 전..
반도체 끝났다고? 모건스탠리가 폭로한 하반기 주식 대이동 시그널
'제2회 전국 우리소리 경창대회' 종로에서 화려한 개막
자연의 모든 것이 대립과 조화로 움직인다고 보았기때문. 짝수는 균형과 안..
보양식을 먹어야 하는 날~。#jejuolletrail #ssicho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경기도 토지거래허가구역 실거주·경작 사후조사 착수 | 부동산 투기 철퇴 ..
단 하나의 빛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선한영향력 #CCBS #칭찬위원연합회..
당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군사정보를 신라 문무왕에게 급히 알리..
허동보의 일히일비(19) - 가려 먹는다고 큰 일이 나진 않아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사랑이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순간 #사랑나눔축제 #칭찬위원연합회 #사랑으..
매듭은 지었지만, 자리는 지킵니다 | 계약해제 수용하라, 현대건설 결단하..
결단이 곧 계약해제 수용입니다 | 현대건설 결단하라, 계약해제 수용하라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 。#ssicho
광교신도시 A17블록 지분적립형 아파트 청년·신생아 특별공급 전격 신설
칭찬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칭찬합시다 #사랑나눔축제 #칭..
카보베르데의 꿈! 인구60만, 작은섬나라!
창덕궁 후뭔에 있는 관람정, 존덕정이나 승재정 방향에서 보면 두 발로 물..
반야탕(般若湯)。낙조가 아름다운 도비산에서 바라보는 천수만, 오랫만에 올..
2026 용인 생활관광 미션투어 스탬프 투어: 여행하고 온누리상품권·투어..
좋은 사람 한 명이 세상을 바꿉니다 #사랑나눔축제 #선한영향력 #칭찬위원..
현대차그룹, 영남에 42조 폭탄 투하 AI 모빌리티 우주 에너지 선점 나..
삼성, 60조 폭탄투자로 영남을 '피지컬 AI 거점' 삼아 20만 일자리..
유튜브 NEWS 더보기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초청토론회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 이스라엘 3대 절기와 그 의미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관계의 언어학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보장특구사업 상리마을 주민리더 도쿄탐방기

봄 (Feat.황정호)

흩어진 말들을 모아 하나의 질서로 세우는 법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50 Movements] #9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 리처드 용재 오닐 & 디토 오케스트라 | Shos...

병원 광고비, 어디서 새고 있습니까? 팀퍼포먼스 정용훈 대표가 말하는 AI 병원 마케팅

믿음의 선배들(8) - 타협을 모르는 순교자, 로마의 히폴리투스

개인vs법인사업자 장단점과 법인전환 절세방법(feat. 가족법인과 영업권으로 절세하기)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8] - 사라진 열 지파, 흔적 찾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8) 욕망의 수렁에서 건져 올린 영혼의 정교한 매뉴얼

#쏠롱구스노래들024 #SOS024 #광야 #Wilderness #정원진 #solongus #CCM #car...

HAUSER - Oblivion (Piazzolla)

칭찬사랑나눔 칭찬합시다축제시작된다. #칭찬문화

은혜와 감동이 물결치는 찬양 - 삼일노회 수련회

믿음의 선배들(7) - 열정의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7] - 피 터지는 성전논쟁, 그 시작은?

캔바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l Canva 팝업 행사 디자인 과정 공개

내면의 깊은 성찰과 거룩한 감사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7)